2018년 상반기 《시사사》 신인상 당선작_ 최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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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05회 작성일 18-08-25 14:22본문
2018년 상반기 《시사사》 신인상 당선작_ 최소연
내용증명 (외 3편)
⸻手
당신의 건강을 신神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펜과 오랜 싸움으로 장지의 손끝에 물집을 지어 주었지요 당신에겐 선명한 손금과 크림샤워가 필요했으나 태풍이 온다는 핑계로 밤마다 회피했어요 그런 당신을 고발하려고 해요 온몸의 2.5% 지분권자에 불과한 당신, 전신에 모든 권리를 가진 것처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에요 방치된 손금엔 오래된 폐수가 흐르고, 가난을 닮은 주름이 시간의 나이테로 둘러지고 있지요 이러한데도 궁색한 변명을 하거나 주름을 처분할 의견을 보이지 않는 당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통지하고, 허물어진 손금의 둥근 허무만큼 손해배상을 청구할 거예요 더구나 게으름으로 입게 된 추가 손해에 대해 의료적 집행절차에 이를 것을 유념하시어 적극 협조 바래요 지금도 상속받은 당신의 지분을 반환할 의사는 전혀 없는지요?
소멸시효 기간 내에 울분으로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달이 지다
경포동 산 52번지 기슭에 그는
둥근 집을 짓고 산다
오래 전부터
뒷골목 검은 바람을 안고 절구질을 한다
생의 가뭄으로 등뼈가 드러나고
어두운 뒤태로 궁핍이 찾아오는 날엔
밤마다 무녀를 찾아간다
시간이 갉아먹어 등이 휘어진 몸,
보릿고개를 넘다가
궁핍의 그림자가 내장 사이에서 기웃거릴 때
활처럼 휜 등뼈로
온몸을 밤새도록 뒤척였다
대추나무 꽃이 필 무렵,
고봉밥 앞에서 나는 보았다
그가 냉수에 슬픔 한 스푼 타 마시는 것을,
내 흰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달이 진다
내 몸속에 빙하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봄비 음계
밤 열한 시, 창밖에서 한 여인이 오카리나를 분다
침묵하던 첫사랑이 부스스 일어난다 수백 가지의 애증이 허공에 쏟아진다 나는 너에게 울음으로 찾아간다 가슴을 밟고 지나가던 바람, 갈지자로 비틀거릴 때 외눈박이의 내가 나란히 걸어간다 멈출 줄 모르는 회중시계를 찬 너는 희미한 옛 기억을 들린다
너의 온몸이 젖어 있다 네가 침묵할수록 내가 사라지고 네가 소리치면 내가 걸어온다 새벽, 쇠처럼 단단한 나의 울음소리가 광야에 홀로 서 있다 그러므로 강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를 들려준다 기러기 떼가 먼 길을 떠나며 우는 울음소리 따라 걷는다
그믐달이 내 생의 저녁을 붙들고 지구를 돌린다
뇌
오늘도 서류가 쌓였어. 몇 그램 안 되는 지식에 간을 맞춰 먹물을 쏟아. 콘택트렌즈가 시력을 잃어간다고 생각했어. 그는 자느라 아침을 굶은 위를 부러워해. 위도 그를 부러워할까 궁금하기도 해. 한 달에 한번은 마술에 걸려 쇼퍼홀릭에 빠지지. 다행히 죄수번호를 받지는 않았어. 허공을 걸어 다니다가 눈에 띄는 사물들에게 말을 걸어. 빨간 의자의 가죽, 의자바퀴 굴러 간 마루의 살갗이 벗겨졌을 거야. 서랍 속 후시딘이 벗겨진 살갗을, 아시클로버는 입술을 핥아. 어제 곱창을 먹고 대장암검사를 깜빡했어.책상 위에 쌓인 서류로 비행기를 접어 날려. 움직이기 싫은 발에게 구두를 신겨. 신발장 위의 다육이가 땅에 눕고 싶어 해. 나는 그 그림자를 밟아. 머릿속이 뿌옇게 안개로 덮이면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마음을 사러 다녀. 천천히 걸어야 넘어지지 않아. 그는 달리고 나는 따라가고. 절대 마음을 팔고 싶지는 않아. 오늘은 주먹이 보를 이기고, 보가 가위를 이겨. 다행히 백열등이 깜빡거릴 뿐 정전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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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연 / 강릉 출생. 주소: 강릉시 운정길11번길. 2018년 상반기 〈시사사〉 신인상 당선.
이메일 csy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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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2018년 상반기 《시사사》 신인추천작품상에서 예심과 추천심의위원들의 추천을 거쳐 김네잎 씨와 최소연 씨 두 분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두 사람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심사위원들은 최소연 씨의 작품에 더 큰 가능성을 보았다.
대체적으로 신인상 응모작품 기준은 시적 형상화 능력 정도, 그리고 시어 선정의 탁월성과 빗댈 대상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의 선택, 표현 기교의 자연스러움, 구조의 안정성을 가장 먼저 살펴보는 일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그 다음이 작품의 밀도이다. 즉 시적 대상에 대한 통찰과 상상력에 의한 사유다. 하나 더 곁들이면 기발한 시적 발상과 개성적인 작품을 찾게 된다.
최소연의 작품들은 앞에서 열거한 명제에 부합되는 기준점에 도달해 있다. 특히 응모작품 중에서 「내용증명」은 대상을 투시하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시의 근간을 이루는 체화와 상상력을 시로 자리바꿈하는 일에 매우 성공적이다. 또 대상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를 내면화하는 철저한 작업은 신인으로서의 미래지향적 가능성을 신뢰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처녀작인 세계의 발견과 시적 표현으로 독특한 개성의 발현을 획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특별히 살펴본 점은 시인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어떠한 것도 유보하지 않고 모두 표현하는 자유연상기법이 「내용증명」에 도입되어 있다. 여기엔 앞에 단어를 보면 관련이 있는 경험을 떠올리는 근접성과 한 가지 사고나 사물이 그와 유사한 사고나 사물을 생각나게 하는 유사성, ‘바나나’를 보면 ‘기차’를 떠올리는 대비성이라는 세 가지 연상법칙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달이 지다」에서는 생에 대한 집요한 응시와 깊은 인식의 척도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풍부한 어휘력으로 시어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경험적 삶의 구체성을 언어로 승화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들은 감정과잉의 함정과 위험으로부터 차단되는 시의 본래적 기능에 충실한 작동이 시스템화 되어 있다.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이번 《시사사》 신인상에 응모한 최소연의 작품들이 갖는 가장 특징적인 것은 참신성으로 변별력을 분명하게 갖췄다는 것이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다음 기회를 기약해 본다.
심사위원 : 원구식, 채선, 심은섭(글), 이재훈
⸻《시사사》 2018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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