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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미네르바>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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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86회 작성일 18-08-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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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신인상 당선작 (2018. 여름호)

 

야생 별꽃 외 2편

 

윤옥란

 

양지쪽 무릎이 해진 작업복들

잔설 속에 피어 있는 별꽃을 유심히 보고 있다

사내들 풀꽃을 보고 봄소식 전하는 것일까

약속이라도 한 듯 휴대폰을 꺼낸다

 

어쩌면 이곳의 봄소식 보다

곧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디 오는 봄을 기다리며

그리움을 반으로 접고 접어 고국으로 동봉하고 있다

 

그 여린 초록의 잎으로

모진 바람 견딘 별꽃이 피고 있을 때

달력에 하루치의 노동을 동그라미로 채웠다

 

사글셋방에서 모진 눈발을 견디며

빗물이 스며든 운동화를 신고

피와 맞바꾼 월급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저 사내들이 사는 마을에도 별꽃이 피었을까

양지쪽에서 얼었다 녹으며 피는 풀꽃

검고 긴 속눈썹의 하루가 한 겹 한 겹,

시린 촉을 밀어 올리며 얼다가 다시 풀릴 것이다

 

구석진 곳에서 고단함을 말리는

기름때 묻은 저 야생 별꽃 같은 무릎들

파랗게 물오른 사내들 목소리

꿈의 빛깔 한 잎 한 잎 물든다

 

 

노루발

 

노루발 소리가 들린다

색색의 실패들과 청바지가 쌓여있는 그 집 앞,

밤늦도록 여자는 노루발과 장단을 맞춘다

 

나는 여자가 안 보이는 바깥에서

섬유회사의 기억을 밟아갔다

숲보다 사람의 체온을 더 좋아하는 노루발,

 

내가 쇠똥내 풍기는

시골에서 왔다는 걸 눈치 채고 노루발은 한 발 달아났다

점퍼나 바지 와이셔츠를 한 땀씩 박음질하다

잠깐 조는 동안 미싱 바늘은 손톱을 뚫고

가위는 손가락의 살점을 도려내어 몽글몽글 꽃잎처럼 피어났다

 

회사의 규칙과 옷감들은 틈을 놓아주지 않았다

들판으로 달아나고픈 가슴을 누비고 누비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장롱 속으로 숨던 날

노루발은 내 심장을 사정없이 지그재그 박음질하였다

 

생의 솔기가 옆으로 터지지 않게 잡아준 노루발,

바늘귀처럼 좁은 세상을 살아가려면

끊어진 실처럼 다시 이어져야만했다

 

숲으로 돌아갈 시간도 잊은 채

여자와 발을 맞추는 저 노루발

달빛도 슬그머니 그 집을 기웃거린다

 

손가락 상처가 아문지 삼십년이 지났다

저녁이면 멀리 달아나지 못하게 드륵드르륵

기억의 노루발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도시의 세렝게티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

  사자 한 마리 저승의 배고픈 냄새를 숨기며 어둠을 핥는다

 

  소리 없이 달려온 사자의 갈기는 굳게 닫힌 요양병원 철문을 넘는다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는 침상에서, 피고름 통증을 움켜 쥔 욕창 침상으로 그리고 가족들조차 알아 볼 수 없는 치매 노인의 침상까지 사자 한 마리 뛰어 든다

 

  낮 동안 깊은 잠에 빠졌던 그녀, 예민한 청력과 후각은 달빛만으로 동공이 밝아진다 오늘은 산소마스크로 생을 의지하는 목숨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사자의 아가리와 맞서는 일은 쉽지 않다 수십 년 야행성 동물로 살아온 그녀, 밤새 검은 사자의 목덜미를 잡고 씨름도 하였다 달빛 그림자에 뼈와 이빨과 발톱자국이 박혀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다시 미음으로 생기 되찾은 초식동물들, 단단한 이빨과 발톱으로 하루를 여닫는 일,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다. 그녀의 눈과 귀는 밤마다 활짝 열린다

 

  도시가 퇴근하는 오후 5시, 그녀는 요양병원으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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