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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회 천강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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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59회 작성일 18-10-1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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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9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

 

나비물

 

    유종서 (51세, 경기 고양시)

 

 

박수소리를 듣는다 그 수도가 박힌 마당은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콸콸콸 물의 박수를 쳐준다

꾸지람을 듣고 온 날에도 그늘이 없는 박수소리에

손을 담그고 저녁별을 바라는 일은 늡늡했다

그런 천연의 박수가 담긴 대얏물에 아버지가 세수를 하면

살비듬이 뜬 그 물에 할머니가 발을 닦으셨다

발등의 저승꽃에도 물을 줘야지

그런 발 닦은 물조차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한 번 박수를 부은 물의 기운을

채송화 봉선화 사루비아 눈치 보는 바랭이풀 잡초까지 물너울을 씌워주고도

박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쯤을 남긴

세숫대야 물을 내게 들려 손님을 맞듯 대문을 여신다

뿌리거라, 길이 팍팍해서야 되겠냐

흙꽃*에게도 물을 줘야지

최대한 물의 보자기를 펼치듯 헹가래를 치는 물

마지막 박수는 이렇게 들뜬 흙먼지를 넓게 가라앉히는 일,

수도꼭지가 박수쳐서 보낸 물의 여행은

아직도 할머니 발등을 적시고 유전(流轉)하는 박수소리로

길을 떠나 사루비아 달콤한 핏빛에도 스며뒀으니

실수하고도 박수를 받으면

언젠가 갸륵한 일들로 재장구쳐오는 날도 있으리라

끝없이 마음의 꿀을 물어오는 저 물의 호접(蝴蝶)

어느 근심의 그늘 밑에 두어도 내내 환하다

 

 

 *흙꽃: 흙먼지의 방언

 

  

귀 화장(化粧)

 

 

그 밤의 속도가 나를 체벌했다

밤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가로수 처진 나뭇가지를 보지 못했을 때

그 어둠의 통박(痛駁)은 내 왼쪽 귀에 불벼락을 놓았다

귓바퀴가 째지고 피가 흘렀다 얼마 후 귀지 대신 피딱지가 앉은 귀를

내 얼굴의 가장 섬뜩한 관심사로 거울에 주었다

 

거울에 비추는 귀는 자꾸 코의 위치를 빼앗았다

귓불이 하나 더 생긴 듯 부푼 귀를 어찌 한다

붉은 입술이 생긴 듯 뭔가 말을 하고 싶은 귀는

자꾸 반문(反問)을 거듭하듯 말문이 트이려는지

자꾸만 발성(發聲)을 찾아가는 저 귀를

다시 침묵에 귀속시켜야 한다

 

아내가 외출하고 없는 오후, 실어증 걸린 햇살이

화장대에 나르시스의 턱을 괴고 앉았는데

화장품을 몰래 가져다 분칠을 한다

쉬 피 얼룩이 가시지 않는 귓바퀴를 토닥토닥 다독인다

피부색에 가깝게 살색 파우더를 두드리는 사이

이제껏 제대로 된 청음(聽音),

그 경청을 불식시킨 나날에 대한 체벌로 부풀어 오른 귀,

주둥이처럼 붉은 귀를 그래도 감싸는 건 뭘까

 

피 냄새와 피 얼룩의 전선을 무너뜨리고

두메양비귀꽃 너른 초원의 세기를 불러오는

지난 세기의 화음(和音)을 다시 불러들이는

내 서툰 화장술로 다친 귀에게

잃어버린 미인계(美人計)로 한 소식을 불러들이려 한다

낮 별들의 가만한 속삭임에 펼쳐진 천마도(天馬圖)를 부르고

내전의 땅 버려진 탱크 캐터필러 사이에 핀 제비꽃의 숨소리를 엿듣는

피 철철 흐르다 멈춘 귀에

아내의 유행 지난 분첩을 치대고 있으면,

그 옛날 피를 토하다 드디어는 득음에 이른

그 목청 속에 학()이 난다는 걸 감히 엿듣고자 부풀어 오른 귀,

 

나는 침묵의 연금술을 귀에 처바르고 있다

 

 

거미를 위하여

 

 

다들 푸르른데 저만 어두운 갈색을 고집하는 나무에게

모두들 죽었다, 죽었다고 대신 고백을 하지만

나무는 제 주검마저 꼿꼿이 세워 사후(死後)를 수립(樹立)하였다

열매도 초록도 없는 저 몸매가 오히려 적격이라고

스스로 마른 나뭇가지 사이의 허공을 개편(改編)하는 거미,

거미줄은 죽은 나뭇가지에 탄력을 되돌리니

죽은 산벚나무도 다시 팽팽한 긴장을 살려내는 듯하다

어느 땐 포악한 사마귀가 걸려들어 사투를 벌일 때면

좀 더 크고 질긴 거미줄을 생각하는 허공이 된다

완강한 저항일수록 더 많은 출렁거림을 잡아내는 허공은  

단면(斷面)에서 입체를 구원하듯

한순간 과감한 대시로 포박을 지를 때의 쾌감은

죽음의 무릅씀과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게 한통속임을 아는 거미다

어느 날엔 이른 단풍잎도 떨어져 걸린다

설렘과 기대가 수포로 돌아가 멀뚱히 쳐다보는 단풍잎,

어느 이른 목숨이 지려거든

저처럼 덧없이 스러지는 걸 붙잡아주는 손길이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거미의 실망은 쓸모없는 것을 눈요기로 바라볼 때

진 단풍잎도 거미줄에서 며칠을 더 붉게 꽃피는 것이다

공중의 개미지옥 같은 거미줄과 거미를 매달고

죽은 산벚나무는 죽어야 사는 게 뭔지를 아는 눈치다

줄광대 어름사니처럼 여름의 줄을 잘 타고나서야

가을에 든 지주(蜘蛛)의 회사는 도산을 준비한다

더 이상 붙잡아 들일 거 없는 가을의 입체파인 거미는

갈잎 드는 저 바닥에 제 몸을 툭, 던지며

그 많던 허공중에서 못 보던 심원한 하늘을 가슴에 품는 것이다

 

  유종서 (필명)

 196857

 * 송순문학상, 지훈상 수상

 * 이메일:jongin-yu@hanmail.net


유종인 /  1968년 인천 출생. 1996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시 「화문석」외 9편이 당선되어 등단. 2003년 〈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 2011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아껴 먹는 슬픔』『교우록』『수수밭 전별기』『숲시집』등, 시조집『얼굴을 더듬다』, 미술 에세이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등.

 

                 

 

   [제9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말의 몸짓과 삶의 율동으로서의 시

 

  

   2018년 제9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2천 편 가까이 모여진 작품 중에서 대상 한 편, 우수상 한 편을 고르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주최하는 쪽에서 그나마 예심과 본심을 구분해 일감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심사하는 일을 그런대로 수월하게 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대상 수상작을 나비물로 선정했다. 선정하는 과정에서, 예상한 것에 비해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 작품을 선정하면서, 나는 시()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의 틀을 세워볼 기회를 가졌다. 내가 늘 시니 소설이니 비평이니 하는 생각 속에서 오래 동안 살아 왔어도 오랜 문학적인 체험에 의한 원론을 체계화시켜본 일은 없어서였다.

   우선 시는 말로 이루어진 것이다. 세상에는 말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 중에서도 수많은 언어 행위의 한 가지가 바로 시인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말이 되지 않는 말이 있다면, 그게 시다.

   언어학자 촘스키는 언젠가 짧은 예문을 만들어 보았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의 한 예문을 삼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를 통해 만들어본 의미론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본 예문은

 

    “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

 

였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색깔 없는 푸른 생각들이 깊이 잠자고 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번역 문장을, 무색투명에 가까운 녹색 관념이 극단적으로 잠자코 있다, 라고 수정한다고 해도 의미론적으로 완결되지 않는 듯싶다. 이와 같이, 말이 되지 않는 말이 바로 시의 (혹은, 시적) 언어인 것이다. 촘스키는 말이 되지 않는 말의 예문을 만들다가, 우연히 (혹은, 우연찮게) 한 문장으로 된 시를 창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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